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OB 베어스 (문단 편집) == 기타 == || [youtube(YPdMN5AcT1s)] || || [youtube(_yhxNz0Bl7o)] || || 2016년에 [[OB맥주]]가 프리미엄 맥주를 출시하며 내놓은 광고들[* 여담으로, 출연한 사람은 당시 두산으로 바뀌기 전의 야구단인 [[OB 베어스]]의 마지막 감독 [[김인식]]이다.] || * 1990년대 [[KBO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에 관련해 프런트가 [[잠실시리즈#s-2.1|주사위의]] [[다이스 갓|신]]한테 버림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주사위 던지기에 져 1993년 드래프트 1차 지명의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을 못 뽑았다.] * 응원곡인 승리의 OB[* 강변가요제 출신 가수 권성연([[영심이]]와 [[피구왕 통키]] 주제가도 불렀다.)이 불렀으며, [[1999년]] [[두산 베어스]]로 팀명이 바뀐 뒤에는 '''우리 두산 멋진 두산'''으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다.]는 [[LG 트윈스]]의 나가자! LG와 마찬가지로 유명하며, 마스코트인 곰돌이의 경우 [[삼성 라이온즈]]의 마스코트인 사자와 마찬가지로 유명하다. 참고로 당시 OB맥주의 맥주 체인점인 OB 베어와 마스코트를 공유했고 마스코트 사용권은 두산이 OB맥주를 매각하면서 완전히 OB맥주에 넘겼다고 한다. 그래서 OB맥주가 OB 라거를 재출시할때 OB 베어스의 마스코트를 쓸 수 있었다고 한다. [[http://kpenews.com/View.aspx?No=96491|#]] 한 술 더 떠 OB맥주에서 이모티콘이나 콜라보 티셔츠 등 뉴트로 마케팅에 써먹고 있다. * 1996년에 가수 유영진이 전년도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바탕으로 [[https://m.blog.naver.com/kbrkjs/220035454957|]]을 불렀다. * 1998년 두산이 OB맥주를 벨기에의 주류 기업인 인터브루[* [[2004년]]에 [[브라질]] 기업 암베브와 합병해서 인베브로 바뀌었다.]에 지분을 50.9%를 매각하여 공동소유가 되었고, 이후 주류 업체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모기업인 두산그룹의 이름을 따서 1999년 [[두산 베어스]]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후에 45%의 지분을 넘겨 현재는 5%만 가지고 있다.)[* 두산그룹은 주류, 식품 등 소비재 위주 기업이었으나 IMF 직전이었던 1990년대 중반부터 소비재 업체들을 매각하고 대신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등을 인수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현재는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를 중심으로 한 중공업이 주력인 기업으로 바뀌었다.] * [[불암콩콩코믹스]]의 작가인 최의민이 좋아하는 팀이라 작가의 오너캐가 OB모자를 쓰고 나온다. * [[유재석]]은 두산 베어스 팬인데, 특히 그 중에서도 OB 베어스 원년팬이라고 한다. * 1985년 [[서울특별시]]로 연고지를 옮긴 후 서울 연고 정착과 야구 저변 확대, 꿈나무 육성 등을 위해 1986년부터 서울지역 초등학교 및 리틀야구 대회를 창설해 현재까지 개최하고 있다. 참고로 이 대회의 초대 우승팀이 서울학동초등학교였는데 이 팀의 주축 선수 중의 한 명이 바로 [[서장훈]]이다. [[서장훈]]은 OB 베어스 원년 시절부터 열렬한 두산 베어스의 팬이며 [[박철순]]의 열렬한 팬으로도 알려져 있다. * 2015시즌을 마지막으로 [[진갑용]], [[박명환]], [[이혜천]]이 모두 은퇴하면서 OB 유니폼을 입어봤던 KBO 현역선수는 전부 사라졌다. 단 현역선수로 범위를 넓히면 이혜천은 호주리그 [[애들레이드 바이트]]에서 뛰기로 했다. * OB 베어스 드래프트 픽 출신으로는 1997년 [[김원섭]], 1999년 [[김성배]], [[정재훈(1980)|정재훈]] 등이 현역으로 뛰고 있다. 다만 이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팀의 명칭이 [[두산 베어스]]로 바뀐 이후에 베어스 선수로 입단했다. 2018년 기준으로 모두 은퇴했다. * 1990년대에는 [[해태 타이거즈]]를 무려 2번이나 가을야구 문턱에서 좌절을 시킨 전력이 있다. 바로 1995년과 1998년인데 1995년에는 OB가 해태와의 추석 연휴 4연전을 싹쓸이 하며 선두로 올라섰고 기세를 몰아 시즌 막판에 LG를 2위로 끌어내리며 반 게임차로 1위를 차지한 반면 해태는 4연전 피스윕 기점으로 휘청거리며 3위 롯데와 4.5게임차로 벌어지며 4위를 하고도 규정상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를 했다.[* 잔여경기 일정에서 [[김성한]]의 은퇴식이 있던 경기도 OB와의 대결이었는데 그 경기도 OB가 이겼다.] 1998년에는 시즌 마지막 경기인 2연전을 남겨두고 4위 해태가 5위 OB에 1게임차로 앞선 상황에 1무만 거두어도 해태가 포스트시즌에 갈 수 있었지만 되려 2경기를 모두 내줘 역으로 5위로 내려 앉았고 OB가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으로 포스트시즌에 합류한다. * 처음 충청도 연고 시절에는 3년 후 서울로 올라가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충청도 지역민들은 OB에 별다른 마음을 주지 않았고, 홈팀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OB가 원년에 연전연승을 기록하면서 성적이 잘 나오고 우승까지 하자 결국 마음을 주게 되었다. 하지만 OB가 서울로 이전한 후 빙그레가 창단되자 대부분은 빙그레로 갈아타게 되었는데, 소수는 OB를 계속 응원하여 80년대 말까지는 충청도에도 OB팬이 제법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OB암흑기가 도래했고 때맞추어 빙그레 이글스가 강팀으로 자리잡으며 결국 충청도의 OB팬들은 대부분 빙그레로 흡수되며 그 명맥이 점점 끊어져 갔다. 아직까지 충청도 출신으로 두산을 응원하는 장년 노년팬들은 원년 베어스팬 중에서도 충성도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잠실 야구장을 함께 쓰는 LG 트윈스보다 인기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특히 1990년대에는 신바람 야구를 표방하던 LG가 최고의 인기 팀이었고 OB는 마이너 팀이었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건 어디까지나 1990년대의 이야기다. 1980년대 당시 OB의 인기도는 LG 전신인 MBC의 인기도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특히 리그 초창기 코어 팬의 한 축인 어린이 팬덤 중에는 [[유재석]], [[정준하]], [[싸이]], [[황정민]] 등 OB를 응원하던 어린이 팬들이 곳곳에 많았는데 대부분 슈퍼스타 [[박철순]]의 존재와 귀엽고 예쁜 유니폼과 곰돌이 마스코트의 영향으로 OB를 응원하는 팬들이었다. 다만 1990년에 LG가 서울 최초의 우승팀 타이틀을 가져가고 1994년에 압도적인 전력으로 또 한 번 통합우승에 성공하는 사이에 OB의 암흑기(소위 꼴비)가 겹치면서 LG보다 상대적으로 팬이 적어보였을 뿐이다. KBO 리그 역사상 OB-두산 팬덤이 마이너로 취급된 시기는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